역사서 속 인물과 기록/승정원일기

[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13] [3-3] 숙종 22년 10월 13일(1696년) | 안용복 1차 도일, 재평가대에 오르다

CurioCrateWitch 2025. 5. 2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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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숙종 22년 10월 13일 - 안용복 1차 도일, 재평가대에 오르다


📜 원문 領府事南九萬以爲, 龍福, 癸酉年, 往鬱島, 被擄於倭人, 入去伯耆州, 則本州成給鬱島永屬朝鮮公文, 且多有贈物, 出來時, 路由馬島, 公文·贈物, 盡爲馬島人所奪云, 而不以其言, 爲必可信矣。今見龍福, 再往伯耆州呈文, 則前言似是實狀。


📝 번역
영부사 남구만이 말하길, "안용복은 계유년(1693년)에 울릉도로 갔다가 왜인에게 사로잡혀 일본의 백기주로 끌려갔습니다. 그때 그곳 관리가 울릉도가 조선에 속한 땅임을 공문으로 작성해 주었고, 많은 선물도 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귀국할 때 마침 대마도를 거쳐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모든 공문과 선물을 대마도인이 빼앗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그의 말은 믿기 어렵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백기주에 가서 상소문을 제출한 것을 보니, 전의 말이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 해설: 안용복의 주장이 '사실'로 떠오르다

이 대목은 안용복의 첫 번째 일본 방문, 즉 1693년(계유년) 도일(渡日) 활동의 신빙성이 조선 조정 내에서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결정적인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과거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일본인에게 붙잡혀 일본 본토

▪︎ 호키슈(백기주, 伯耆州, 오늘날의 돗토리현)까지 끌려갔다가, 그곳 관리로부터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하는 공문과 함께 선물을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귀국 길에

▪︎ 대마도(對馬島, 쓰시마섬)**를 거치면서 모든 증거물을 빼앗겼다고 주장해,

당시 조정은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장되거나 조작된 이야기일 수 있다고 의심했죠. 하지만 영부사 남구만은 안용복이 두 번째로 백기주에 직접 가서 다시 상소문을 제출한 사실에 주목합니다.

이는 안용복의 이전 주장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실제 외교적 접촉이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남구만의 발언을 통해 조정은 이제 안용복의 과거 진술을 재검토하고 그의 활동을 새롭게 평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안용복의 이 1차 도일 활동이 조선 측 사료뿐만 아니라 일본 측 문헌에서도 교차 확인된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조선인 표착기사(朝鮮人漂着記事)』에는

竹嶋・磯竹嶋之儀者 朝鮮国之境界ニ而我国之場所ニ無之候事 죽도(울릉도)와 소죽도(독도)는 조선의 경계 안에 있으며, 우리나라(일본) 영토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元禄九年五月二十六日付, 서기 1696년 5월 26일)

라는 백기주 요나고 관아의 공식 회신 기록이 등장합니다.

이는 안용복이 받았다고 주장했던 공문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한·일 양국 사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입증되는 안용복의 외교 활동은, 그가 단순한 월경인이 아닌 조선의 영토 주권을 지키기 위해 직접 나섰던 역사적 인물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 대목은 안용복을 둘러싼 조정의 고민이 '단순한 처벌'을 넘어 '외교적 자산으로서의 재평가'라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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