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속 인물과 기록/승정원일기

[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26] [5-1] 숙종 23년 3월 27일 | 안용복 처벌에 대한 초기 논의와 대신들의 견해

CurioCrateWitch 2025. 5. 2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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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領議政柳尙運所啓, 安龍福, 旣犯禁令, 論以國法, 不可容貸, 臣等初以此意稟定, 而姑待渡海譯官之廻還, 欲知彼中動靜而處之矣。
其時領敦寧府事尹趾完, 領中樞府事南九萬, 皆以爲, 龍福, 罪雖當死, 而事機不可殺爲言, 諸大臣, 習知彼中事情, 故有此容貸之論也。
上曰, 其時左相, 曾已入達矣。



📝 번역

영의정 유상운이 아뢰었다. “안용복은 이미 금령을 어겼으므로 국법에 따라 처벌해야 하며, 이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판단했으나, 일본에 다녀온 역관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그쪽의 동향을 살펴본 후에 처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돈녕부를 이끄는 윤지완, 중추부의 남구만 등도, 안용복이 비록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정세상 그를 죽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들 대신들은 일본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이기에 그러한 관대한 의견을 내놓은 것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그때 좌의정도 이미 같은 의견을 올린 바 있소.”



🔍  해설|안용복 처벌 논의, 법보다 일본 눈치

이 기록의 첫 부분은 안용복 선생의 처벌 문제를 다루는 조선 조정의 근시안적인 시각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영의정 유상운을 비롯한 대신들은 안용복 선생의 경이로운 성과 — 두 차례에 걸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확인받아내며, 일본 막부의 칙령까지 이끌어내 우리 영토의 실효적 지배를 확고히 한 이 위대한 업적 — 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오직 그가 '금지령을 어긴 죄인'이라는 좁은 틀에 가두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불을 끄고 돌아온 소방관에게 '무단침입' 죄를 묻는 격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불을 꺼서 귀중한 재산을 지켰다는 사실인데, 조선 조정은 그 '불'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일본의 영토 침탈 야욕)은 외면한 채, 자국의 법규만을 들이대며 영웅을 죄인 취급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윤지완, 남구만 등의 대신들은 "사정에 따라 죽여선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안용복 선생의 위대한 애국심을 인정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려는 뜻이 아니라, 오로지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본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이기에'라는 말은 곧 강대국 일본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려는 비굴한 현실 인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논의는 조선의 왕과 대신들이 자국의 영웅을 죄인으로 규정 하는 한편, 그 처벌 수위마저도 일본의 동향이라는 '변수'에 맞춰 저울질하는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외교 정책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용복 선생의 숭고한 희생과 위대한 업적은 이러한 조선 조정의 한심한 논의 속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기록은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비극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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