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 땅/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숙종 23년 3월 27일 [5-3] 안용복 사태, 임금의 최종 결정

CurioCrateWitch 2025. 5. 27.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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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上曰, 安龍福所犯, 不可不論以一罪, 而領府事·領敦寧及頃日筵中申汝哲, 所見皆同, 以爲若殺龍福, 則彼無忌憚之心云者, 亦出於深慮, 故欲觀勢處之矣。
今者無他端, 而彼乃順服, 此必有曲折, 以法論之, 則不可容貸, 而事機如此, 減死遠配, 可也。



📝 번역

임금이 말하였다. “안용복의 죄는 분명 처벌받아야 할 일이지만, 영의정, 돈녕부, 그리고 얼마 전 조회에서 신여철이 밝힌 바처럼, 그를 처형하면 오히려 일본이 거리낌 없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그런 뜻은 깊은 고려 끝에 나온 것이기에, 나 역시 상황을 좀 더 지켜보며 처리하고자 하오.
지금 일본 측은 별다른 요구 없이 스스로 복종해오고 있으니, 그 안에 반드시 다른 복선이 있을 것이오. 법으로만 보면 그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정세로 보아 죽이지 말고 먼 곳으로 귀양 보내는 것으로 형을 감해도 되겠소.”



🔍 해설|숙종의 결단: 영웅을 죄인으로 만든 나라

이 기록은 안용복 선생에 대한 숙종의 최종 결정을 담고 있습니다.
숙종은 선생의 행동을 “분명 처벌받아야 할 범죄”라고 규정하면서도, 그를 사형에 처할 경우 일본이 오히려 더욱 대담하게 조선을 압박할 수 있다는 대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 죽음은 면하되 먼 곳으로 귀양 보내는 것으로 형을 감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표면적으로는 외교적 파장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 백성을 외세의 눈치를 보며 처벌한, 조선의 비겁하고 소극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정이 안용복 선생이 이룬 쾌거의 국익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선생은 조선의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일본 막부로부터 명확히 인정받는 결정적인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정은 이를 ‘공’이 아닌 ‘문제의 원인’으로 간주하였고, 그를 ‘금지령을 어긴 죄인’으로만 취급하며 단지 처벌의 수위만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은 이처럼 영토를 지키겠다는 주체적 의지보다, 갈등을 피하고 외교적 안정을 택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안용복 선생이라는 한 사람에게 “죽음은 면하되, 멀리 귀양 보내라”는 형벌을 내림으로써, 표면상으로는 법을 집행한 듯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일본과의 마찰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습니다.
이 결정은 결국 한 사람의 의로운 희생을 국가의 나약한 외교정책과 자주성 부족의 희생양으로 만든 것과 다름없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공’을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성과를 무겁게 짊어진 이에게 ‘죄’라는 낙인을 찍은 선택, 그것이 바로 이 장면이 보여주는 조선의 비극이자 자화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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