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속 인물과 기록/조선왕조실록

[별책부록 #1] 조선시대 사관의 논평은 언제 어떻게 작성됐을까?

CurioCrateWitch 2025. 6. 1. 03:03


📜 사관의 붓끝에서 울려 퍼진 외침 – 『조선왕조실록』 속 안용복과 울릉도 논평 이야기


『조선왕조실록』을 탐독하던 중, 제 마음을 움직인 매우 흥미롭고도 중요한 기록 하나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바로 사관(史官)의 논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려다 곤장 100대와 유배형까지 감수했던 안용복 선생.
그분의 희생에 대해 늘 가슴 아프고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조선왕조실록』 속 사관의 논평에서 저와 같은 시선, 같은 울림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왕조실록』은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원칙인 역사서입니다. 그렇다면 사관들은 어떤 경우에 자신의 의견을 기록할 수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그 논평은 왜 지금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까요?


🖋 『조선왕조실록』 속 사관 논평이란?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일상부터 국가 정책, 재해와 민생까지 모든 것을 기록한 방대한 역사서입니다.
그 핵심은 사관들의 '직필(直筆)' 정신에 있었습니다.
이 직필 정신을 지키기 위해 사관들은 철저한 독립성을 보장받았고, 심지어 임금조차 실록을 열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관들은 단순한 기록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건의 맥락과 인물에 대한 평가, 교훈까지 담은 ‘사론(史論)’ 또는 ‘사평(史評)’을 함께 남기곤 했습니다.
이로써 실록은 단순한 연대기가 아닌, 당대 지식인의 통찰이 담긴 살아 있는 역사서가 되었습니다.


🔍 사관 논평이 중요한 이유

1. 역사적 평가와 교훈
→ 인물과 사건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판단을 통해 후대에 교훈을 전했습니다.

2. 권력에 대한 견제
→ 임금과 대신의 잘못을 가감 없이 비판하며 권력을 견제했습니다.

3. 미래 세대를 위한 메시지
→ 유사한 상황이 다시 닥쳤을 때 지혜롭게 대응하라는 당부를 담았습니다.


사관의 논평은 실록 곳곳에 “사신왈(史臣曰)” 또는 “사신은 논한다”는 형식으로 등장하며, 실록의 중요한 문학적·정치적 특징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 숙종 20년, 울릉도-독도와 관련된 사관의 외침

제가 특히 감동했던 사관 논평은 숙종 20년(1694년) 2월 23일 기록에 실려 있습니다.
당시는 일본과 울릉도(죽도) 문제로 민감한 외교 갈등이 있었던 시기였지요.

사관은 이렇게 논평합니다:

"왜인들이 이른바 다케시마(竹島, 죽도)라고 부르는 곳은 곧 우리나라 울릉도(鬱陵島)이다. 울릉도라는 명칭은 신라, 고려의 사서와 당나라 문인의 문집에도 보이며 유래가 깊다. 섬에 대나무가 많아 ‘죽도’라 부르기도 했지만, 결국 한 섬에 두 이름이 있는 것이다.

왜인들은 울릉도라는 이름을 숨기고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어업 금지를 요청했고, 우리 조정이 허락한 것을 근거로 삼아 울릉도를 차지하려는 계략을 꾸몄다.

... 조상 대대로 이어온 강토를 남에게 줄 수는 없다. 명확히 변론하고, 교활한 왜인들이 다시는 흑심을 품지 못하도록 꾸짖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조정이 지나치게 조심하여 백성들만 단속하고, 범인들에게 죄를 매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약점을 더욱 드러낸 것이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 이 논평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1. 조선의 명확한 영토 인식

사관은 ‘죽도’는 ‘울릉도’이며, “한 섬에 두 이름”일 뿐이라고 단정합니다. 이는 조선이 울릉도와 독도를 명확히 자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2. 일본의 외교적 계략 간파

사관은 일본이 ‘울릉’이라는 명칭을 감추고 ‘죽도’만 언급하며 어업 금지를 요청한 것이 실질적 영유권 확보를 위한 술수임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3. 조선 조정에 대한 날 선 비판

사관은 조정이 일본의 눈치를 보며 백성을 단속한 것을 강하게 질책합니다.
이는 주권 의식의 부재약점 노출이라는 이중의 잘못을 지적한 것으로, 지금 봐도 통렬한 비판입니다.


💡 오늘날 우리가 이 논평에서 배워야 할 것

이 사관의 논평은 단지 과거를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독도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도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1.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는 용기

사관들은 조정의 입장과 다르더라도 진실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훗날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명하는 강력한 사료가 됩니다.

2. 시대를 초월한 역사 의식

300여 년 전 사관의 외침은 지금 우리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공감은 민족 정체성과 주권 의식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조선왕조실록』 속 사관의 논평은
기록자의 양심이자, 미래를 향한 당부입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흔들리지 않도록,
이 글이 작은 이정표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에도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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