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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별책부록 #2] 안용복 사건, 대마도 중심 외교 체계를 뒤흔들다

by CurioCrateWitch 2025.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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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 중개외교: 안용복 사건과의 관계

  안용복 사건은 이처럼 오랫동안 고착되었던 대마도 중심의 중개 외교 구조를 뒤흔든 결정적인 사건였습니다.

당시 울릉도와 독도(조선에서는 우산도 또는 자산도로 인식)는 조선 어민들에게 중요한 어장이었지만, 일본 측의 무단 침범과 어로 활동이 빈번하여 조선 어민들과의 마찰이 잦았습니다. 안용복의 행동은 이러한 어업권 침해 문제와 영토 인식의 갈등 속에서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안용복은 조정의 공식 명령 없이 일본에 건너가, 기유약조가 정한 대마도를 거치지 않고 일본 본토의 관청(호키슈, 현재의 돗토리현)에 직접 조선의 입장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는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땅”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일부 일본 관리로부터 조선의 영유권을 인정받는 문서를 확보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조선이 대마도를 거치지 않고도 일본과 직접 접촉할 수 있다는 새로운 외교적 가능성을 열어 보였고, 동시에 대마도가 외교 독점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전례 없는 두려움을 갖게 만든 중대한 사태였습니다.

조선 조정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극심한 논의가 벌어졌습니다. 일부 대신들은 안용복의 행동을 조정 질서를 위반한 중대한 범법 행위로 간주하며 처벌을 주장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가 열어젖힌 새로운 외교 가능성과 일본 측으로부터 조선의 영유권을 인정한 문서를 확보한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하였습니다.

안용복 사건은 조선 후기 외교사에서 드물게 민간인이 중심이 되어 국가 외교 질서에 충격을 준 사건이자, 외교 창구의 가능성을 시험한 사실상의 ‘외교 실험’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기유약조 체제의 균열을 시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조선 조정이 대마도 중심의 외교 체계가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고, 향후 대일 외교의 방향과 원칙을 새롭게 정립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중요한 촉발점이 되었습니다.

기유약조는 조선의 대일 외교에서 ‘조정 중심의 권위’와 ‘대마도라는 통로’의 불가분성을 제도화한 조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용복 사건은 이 체계 바깥에서 이루어진 민간인의 행동이 외교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조선 조정과 대마도 양측 모두에게 긴장과 재정비의 필요성을 자극하는 중대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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