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숙종 22년 10월 13일 - 조선, 외교 주도권을 되찾으려 하다
📜 원문
至於事係鬱島, 變幻欺謾之狀, 不可不因此機會, 使萊府送書馬島, 條列詰問, 明辯而痛斥之矣。
彼若更有巧飾不服之言, 自我又送書以問曰,
汝居兩國間, 凡事之無信如此, 龍福, 以漂風賤氓, 無國書, 自爲呈文, 日本之不可取信, 固也。
自朝廷, 將欲別遣使臣於日本, 以審其虛實, 汝將何以處之云爾,
則馬島倭, 必大生恐㤼, 服罪哀乞。
夫然後, 龍福之罪, 自我議其輕重而處之。
📝 번역
이 사건은 울릉도와 관련된 문제이며, 왜인들이 지속적으로 보여온 외교적 기만을 고려할 때,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조정은 동래부를 통해 쓰시마섬(對馬島, 대마도)에 공문을 보내, 사안별로 조목조목 추궁하고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힌 뒤, 단호하게 꾸짖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쓰시마섬 측이 다시 교묘한 말로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면, 조정은 다시 공문을 보내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합니다.
"너희는 양국 사이에서 매사에 이처럼 신의를 저버렸구나. 안용복은 그저 풍랑에 떠밀려온 천한 백성에 불과하며, 국서 한 장 없이 개인 자격으로 상소문을 제출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말에 반응한 일본의 태도는, 스스로 신뢰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낸 것이다. 조정은 일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공식 사신을 별도로 파견할 예정이니, 이에 대해 쓰시마섬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렇게 추궁하면 쓰시마섬 왜인들은 반드시 크게 두려워하며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그리한 뒤에야, 안용복의 죄는 조정이 스스로 그 경중을 판단해 정당하게 처리하면 되는 일입니다.
🔍 해설|조선 외교, 수세에서 능동으로
이 대목은 조선 조정이 안용복 사건을 단순한 불법 출국 문제로 보지 않고, 외교 주도권을 되찾을 기회로 삼고자 했던 순간을 보여줍니다.
조정은 대마도가 울릉도 문제를 둘러싸고 조선과 일본을 동시에 속이며 중개권을 독점해온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외교 경로를 대마도에서 일본 본토로 옮기려는 시도를 강하게 내비친 것입니다.
“조정이 공식 사신을 일본 본토에 파견하겠다”
→ 이는 곧 대마도의 중개 역할을 배제하고, 조선이 외교의 직접 당사자가 되겠다는 강한 메시지입니다.
또한, “그 후에야 안용복의 처벌을 논의하면 된다”는 문장은,
조선이 외부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국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겠다는 강한 주권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된 쌀·나무·종이 등 대마도에 대한 물자 지원 문제는,
대마도가 조선의 지원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조선의 ‘적선미’를 받아왔던 대마도가 협박성 발언으로 물자 감축을 거론한 것은, 더 이상 조선이 베풀지 않겠다는 외교 독립 선언 앞에 허세로 읽힐 뿐이었습니다.
'역사서 속 인물과 기록 > 승정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책부록 #2] 안용복 사건, 대마도 중심 외교 체계를 뒤흔들다 (7) | 2025.05.24 |
---|---|
[별책부록 #1] 조선은 왜 대마도를 통해 일본과 간접외교를 했을까 (8) | 2025.05.24 |
[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14] [3-4] 숙종 22년 10월 13일(1696년) | 안용복이 폭로한 대마도의 민낯 (7) | 2025.05.24 |
[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13] [3-3] 숙종 22년 10월 13일(1696년) | 안용복 1차 도일, 재평가대에 오르다 (10) | 2025.05.24 |
[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12] [3-2] 숙종 22년 10월 13일(1696년) 윤지완, 안용복을 두고 외교적 셈법을 고민하다 (9) | 2025.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