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안용복 선생님의 처벌이 점점 기정사실처럼 굳어져 가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저는 이미 번역을 마쳐서 이후의 상황을 알고 있지만,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이 대목을 다시 읽으며 그때보다 더 깊이, 더 뼈저리게 그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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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외교에서의 신뢰성 문제와 기밀 누설 우려
📜 원문
夫與他國相爭之事, 必須明白, 然後可以折服。 而所言若是做作, 則必不見信於他國, 情狀可惡。 且壬戌年信使時約條之事, 初無文書, 亦涉袐密, 若無傳說之人, 龍福何以得聞, 而有此呈訴他國之事乎?
📝 번역
외국과 다툴 일이 있다면 반드시 분명한 사실에 근거해야 상대국을 설득할 수 있을 텐데, 만약 그의 말이 꾸며낸 것이라면 외국에서 믿지 않을 것이고, 그 태도는 실로 가증스럽기까지 합니다.
또한 임술년(1682년) 사신 파견 당시의 조약 조건은 애초에 공식 문서가 없었고, 매우 기밀스러운 사안이었는데, 그에 대해 전해들은 자도 없는데 안용복이 어찌 알았으며 그 내용을 일본에 제출한단 말입니까?
좌부승지 유집일이 안용복을 향해 겨눈 칼날은 단지 개인의 진술 오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안용복의 행위가 조선 외교 전반에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유집일은 강조합니다.
“외교는 반드시 분명한 사실에 근거해야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만약 안용복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것이라면?
외국은 조선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며,
그는 그 태도를 가리켜 “실로 가증스럽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허풍’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외교 신뢰와 체면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라는 무거운 경고였습니다.
그리고 유집일의 결정타가 이어집니다.
그는 임술년(1682) 통신사 파견 당시의 기밀 외교 조항을 거론합니다.
그 조약은 문서화되지 않았고, 일부 고위층만 은밀히 공유했던 극비 사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안용복은 그 내용을 어찌 알고, 일본에 상소의 근거로 제출했는가?
이 질문 하나로 안용복은 궁지에 몰립니다.
평민인 그가 어떻게 접근조차 불가능한 기밀을 알았단 말인가?
유집일의 날카로운 추궁은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습니다.
1. 국가 기밀 유출의 가능성
▪︎ 어떻게 알았을까?
안용복이 통신사 행렬에 간접적으로 참여했거나,
관련 내용을 알고 있던 조선 내 인물에게 은밀히 귀띔받았을 가능성
또는 울릉도·독도 문제에 대한 비공식 정보 수집 활동을 했을 수도 있음
▪︎ 어떻게 사용했을까?
“조선 조정도 이미 이런 입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행동이 민간인의 돌출이 아니라 조선의 연장선임을 설득
일본 측을 압박하는 데 기밀 정보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되었을 가능성
2. 허위 주장 가능성
▪︎ 어떻게 알았을까?
알지 못한 채로, 꾸며냈다.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외교 조약을 지어냈을 가능성
▪︎ 어떻게 사용했을까?
일본에 “과거 조선 조정도 그랬다”고 속이며, 자신의 발언에 공식성을 입히려 함
조선을 믿게 하거나, 일본을 겁주기 위한 정치적 과장 가능성.
유집일의 전략적 의도
유집일은 안용복을 더 이상 “용기 있는 민간 외교가”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안용복을
“자신의 공을 부풀리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국가를 곤란에 빠뜨린 불신의 인물”
로 낙인찍습니다.
이는 [4-2]의 진술 불일치보다 훨씬 강력한 공격입니다.
‘외교 기밀 누설’이라는 국기 문란 사안으로 격상되면서, 이제 안용복은 단순한 월경자가 아니라,
조선 외교를 위협하는 내부 변수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입니다.
이 주장 이후, 조정의 분위기는 결정적으로 기울었을 가능성이 큽니다.더 이상 “그의 공도 있으니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대로 두었다간 외교적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경고 앞에 묻혀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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