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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18] [3-8] 숙종 22년 10월 13일 | 안용복 사건: 조선 외교의 딜레마와 결단의 유예

by CurioCrateWitch 2025.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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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숙종 22년 10월 13일 안용복 사건: 조선 외교의 딜레마와 결단의 유예

📜 원문

在外大臣之意, 皆以爲, 
殺龍福則正中島主之奸計云, 而南九萬之上策, 似難輕議。
且龍福, 非偶然飄風之比, 而自伯耆州, 私自往來, 朝家不罪龍福, 而專責馬島, 則有若自朝家使爲者然矣。
安龍福·李仁成, 則姑爲因囚, 待首相出仕後處之, 其餘脅從者, 朝家旣溥之生議, 則滯囚可慮, 先爲放釋乎?
上曰, 領府事上策, 未知, 何如? 待領相出仕後, 更加商議稟處, 似好。 龍福·仁成, 待大臣問議後處之, 此外諸人, 則先爲放送, 可也。



📝 번역

외부에 파견된 대신들 모두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안용복을 처형하는 것은 오히려 대마도주(對馬島主, 쓰시마노슈)의 간계에 정통으로 말려드는 것이며, 남구만이 제시한 상책은 결코 가볍게 논의해서는 안 될 사안입니다.

또한 안용복은 단순히 풍랑에 떠밀려 일본에 간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 백기주(伯耆州, 호키슈)에 드나들며 사적으로 왕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조정이 그를 처벌하지 않고 대마도(對馬島, 쓰시마)만을 꾸짖는다면, 이는 자칫 조정이 그를 공식 사절로 보낸 것처럼 오해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안용복과 이인성은 일단 임시로 구금해 두고, 좌의정이 조정에 나아온 뒤에 다시 논의하여 처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 외 가담한 이들은, 이미 조정이 그들의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한 바 있으니, 이들을 계속 구금해 두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먼저 석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임금이 말하였다. “남구만이 제안한 상책은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좌의정이 조정에 나아온 뒤에 다시 논의하여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 안용복과 이인성은 대신들의 의견을 들은 후에 처분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우선 석방하라.” 


🔍 해설 안용복 사건: 조선 외교의 딜레마와 결단 유예

[3-8] 단락은 안용복 사건을 둘러싼 조선 조정의 전략적 고심과 내부 논의의 균열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핵심은 '무엇을 선택했는가'가 아니라, '왜 아직 선택하지 못했는가'에 있습니다.

1. 조정 대신들의 우려: 조선 외교의 딜레마

외부에 파견됐던 대신들은 안용복의 처형에 강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를 섣불리 단죄하는 것은 오히려 쓰시마섬(對馬島, 대마도) 도주의 의도에 조선이 말려드는 일이자, 자국민을 먼저 희생시킴으로써 스스로 외교적 주도권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안용복이 단순 표류자가 아닌 의도적으로 일본 본토를 왕래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를 일절 꾸짖지 않고 쓰시마섬(對馬島, 대마도)만을 질책한다면, 조선이 그를 공식 파견한 외교 사절로 인정한 것처럼 오해받을 가능성도 존재했습니다. 조선은 이처럼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외교적 입지에 손상이 가는 심각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2. 국왕의 판단: 결단의 보류와 단계적 대응

이러한 의견들을 들은 국왕은 즉각적인 상책 채택을 유보하고, 안용복과 이인성에 대해서도 좌의정이 조정에 복귀한 뒤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합니다. 반면, 나머지 가담자들은 석방하라는 명령을 내려 부분적 해소와 부담 경감의 길을 선택합니다. 이는 안용복 사건을 성급히 단죄하지 않되, 전체 조정 체계의 논의를 존중하고 외교적 파장을 최대한 분산시키려는 유연한 전략이었습니다.


3. 핵심은 결단의 유예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조선 조정이 상책도, 중책도 즉시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조정은 모든 판단을 보류하고, 향후 상황과 내부 합의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의도적인 ‘정지’ 상태를 택합니다. 이는 외교적 주권과 내치의 정당성 사이에서 조선이 줄타기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자, 안용복 사건이 단순한 민간인의 일탈이 아닌 국가 전략의 핵심 축을 흔드는 이슈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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