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자병법 #03] 제3편 모공(謀攻) : 싸우지 않고 이기는 지혜
1. 도입부
손자병법 제3편 〈모공〉은 전쟁의 역설을 가장 강렬하게 던지는 장이다. 우리는 '백전백승'을 최고로 여기지만, 손자는 단호히 말한다. 그건 아직 부족한 승리일 뿐이라고. 진정한 최고의 승리는 피 흘리지 않고, 적을 온전히 보존한 채 — 싸움 없이 적의 군대를 굴복시켜 전쟁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 不戰而屈人之兵이다. 승리보다 더 높은 가치인 '온전함(全)'에 초점을 맞춘 이 편은, 단순 군사 전략을 넘어 현대 경영·리더십·인간관계까지 꿰뚫는 지혜의 핵심을 제시한다.
2. 원문과 번역
[3-1] 온전함이 최상이다
孫子曰:凡用兵之法,全國為上,破國次之;全軍為上,破軍次之;全旅為上,破旅次之;全卒為上,破卒次之;全伍為上,破伍次之。 (손자왈: 범용병지법, 전국위상, 파국차지; 전군위상, 파군차지; 전려위상, 파려차지; 전졸위상, 파졸차지; 전오위상, 파오차지.)
손자가 말했다. 무릇 용병술이란, 적국을 온전히 얻는 것이 최상이며, 적국을 무너뜨려 얻는 것은 그다음이다. 적의 군(軍)을 온전히 얻는 것이 최상이며, 격파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적의 여(旅, 500인)를 온전히 얻는 것이 최상이며, 파괴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적의 졸(卒, 100인)을 온전히 얻는 것이 최상이며, 파괴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적의 오(伍, 5인)를 온전히 얻는 것이 최상이며, 파괴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3-2]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是故百戰百勝,非善之善者也;不戰而屈人之兵,善之善者也。 (시고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이런 까닭으로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 이것이 최선이다.
[3-3] 공격의 네 단계
故上兵伐謀,其次伐交,其次伐兵,其下攻城。攻城之法,為不得已。修櫓轒轀,具器械,三月而後成;距闉,又三月而後已。將不勝其忿,而蟻附之,殺士三分之一,而城不拔者,此攻之災也。 (고상병벌모, 기차벌교, 기차벌병, 기하공성. 공성지법, 위부득이. 수로분온, 구기계, 삼월이후성; 거은, 우삼월이후이. 장불승기분, 이의부지, 살사삼분지일, 이성불발자, 차공지재야.)
그러므로 최상의 방책은 적의 전략을 꺾는 것이고, 그다음은 적의 외교를 끊는 것이며, 그다음은 적의 군대를 치는 것이다. 최하의 방책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니, 성을 공격하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쓰는 최후의 수단이다. 큰 방패(櫓)와 공성차(轒轀)를 만들고 기계 도구를 갖추는 데 석 달이 걸리고, 흙을 쌓아 성벽을 넘는 작업(距闉)에 또 석 달이 걸린다. 장수가 분노를 이기지 못해 개미 떼처럼 병사들을 성에 붙여 공격하다가, 병사 셋 중 하나를 잃고도 성을 빼앗지 못하면, 이것이 바로 공격의 재앙이다.
[3-4] 모공의 법
故善用兵者,屈人之兵而非戰也,拔人之城而非攻也,毀人之國而非久也。必以全爭於天下,故兵不頓而利可全,此謀攻之法也。 (고선용병자, 굴인지병이비전야, 발인지성이비공야, 훼인지국이비구야. 필이전쟁어천하, 고병부돈이리가전, 차모공지법야.)
그러므로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되 싸우지 않고, 성을 빼앗되 공격하지 않으며, 나라를 무너뜨리되 오래 끌지 않는다. 반드시 온전함으로 천하와 다투니, 군대가 지치지 않고 이익을 온전히 얻는다. 이것이 바로 모공의 법이다.
[3-5] 병력에 따른 용병법
故用兵之法,十則圍之,五則攻之,倍則分之,敵則能戰之,少則能守之,不若則能避之。故小敵之堅,大敵之擒也。 (고용병지법, 십즉위지, 오즉공지, 배즉분지, 적즉능전지, 소즉능수지, 불약즉능피지. 고소적지견, 대적지금야.)
그러므로 용병의 법은, 병력이 열 배면 포위하고, 다섯 배면 공격하며, 두 배면 적을 분산시킨다. 대등하면 싸우고, 적으면 지키며, 못하면 피한다. 그래서 작은 적이 무리하게 버티면 큰 적에게 사로잡히게 된다.
[3-6] 장수는 나라의 보필이다
夫將者,國之輔也。輔周則國必强,輔隙則國必弱。 (부장자, 국지보야. 보주즉국필강, 보극즉국필약.)
대저 장수는 나라의 보필이다. 보필이 빈틈없으면 나라가 반드시 강해지고, 보필에 틈이 생기면 나라가 반드시 약해진다.
[3-7] 군주가 군대에 끼치는 세 가지 해악
故君之所以患於軍者三:不知軍之不可以進,而謂之進,不知軍之不可以退,而謂之退,是爲縻軍;不知三軍之事,而同三軍之政,則軍士惑矣;不知三軍之權,而同三軍之任,則軍士疑矣。三軍旣惑且疑,則諸侯之難至矣,是謂亂軍引勝。 (고군지소이환어군자삼: 부지군지불가이진, 이위지진, 부지군지불가이퇴, 이위지퇴, 시위미군; 부지삼군지사, 이동삼군지정, 즉군사혹의; 부지삼군지권, 이동삼군지임, 즉군사의의. 삼군기혹차의, 즉제후지난지의, 시위난군인승.)
군주가 군대에 끼치는 해로움은 세 가지다. 군대가 진격할 수 없는데도 진격하라 명하고, 퇴각할 수 없는데도 퇴각하라 명하는 것, 이것이 군대를 묶어두는 꼴(縻軍)이다. 삼군의 일을 모르면서 삼군의 정치에 관여하면 군사들이 혼란에 빠지고, 삼군의 권한을 모르면서 삼군의 임무에 관여하면 군사들이 의심에 빠진다. 삼군이 혼란과 의심에 빠지면 제후들의 난리가 닥치게 되니, 이것을 일컬어 '스스로 군대를 어지럽혀 적에게 승리를 안겨준다'고 한다.
[3-8] 승리를 아는 다섯 가지 기준
故知勝有五:知可以戰與不可以戰者勝,識衆寡之用者勝,上下同欲者勝,以虞待不虞者勝,將能而君不御者勝。此五者,知勝之道也。 (고지승유오: 지가이전여불가이전자승, 식중과지용자승, 상하동욕자승, 이우대불우자승, 장능이군불어자승. 차오자, 지승지도야.)
그러므로 승리를 아는 데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싸워야 할 때와 싸워서는 안 될 때를 아는 자가 승리한다. 병력의 많고 적음에 따른 운용법을 아는 자가 승리한다. 위아래가 같은 목표를 가진 자가 승리한다. 만반의 준비로 무방비한 적을 기다리는 자가 승리한다.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제어하지 않는 자가 승리한다. 이 다섯 가지가 승리를 아는 도(道)다.
[3-9] 지피지기 백전불태
故曰:知彼知己,百戰不殆;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不知彼不知己,每戰必殆。 (고왈: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
그래서 이르기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진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다.
3. 한자 풀이
謀攻 (모공): 지략으로 적을 침. 직접 칼을 휘두르지 않고 머리로 먼저 적을 무너뜨리는 것. 전쟁을 '전투'가 아니라 '계획의 격차 싸움'으로 보는 손자의 철학을 상징한다.
謀 (꾀 모): 言(말씀 언) + 某(모).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는 것.
攻 (칠 공): 工(장인 공) + 攵(칠 복). 도구를 들고 치는 행위. 여기서는 지략을 도구 삼아 공격함을 뜻한다.
全 (온전할 전): 亼(모을 집) + 玉(구슬 옥). 덮개 아래 흠 없이 보존된 구슬. 적의 영토와 자원을 파괴하지 않고 고스란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경영적 승리'.
破 (깨뜨릴 파): 石(돌 석) + 皮(가죽 피). 돌로 가죽을 찢거나 바위를 깨는 모습. 손자는 부수어 얻는 승리를 '차선(次)'으로 본다.
屈 (굽힐 굴): 尸(주검 시) + 出(나갈 출). 좁은 구멍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웅크린 모양. 무력으로 짓밟는 것이 아니라, 적 스스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심리적 제압을 뜻한다.
伐 (칠 벌): 人(사람 인) + 戈(창 과). 사람 목에 창을 들이댄 모습. 단순히 때리는 것이 아니라 근본을 끊어내는 정벌을 뜻한다.
伐謀 (벌모): 적의 전략을 쳐서 시도조차 못 하게 함. 최상의 방책.
伐交 (벌교): 적의 동맹을 끊어 고립시킴. 그다음 방책.
櫓 (방패 로): 공성전에서 병사를 보호하는 큰 방패.
轒轀 (분온): 공성용 수레. 성벽에 접근할 때 쓰는 덮개 달린 전차.
距闉 (거은): 흙을 쌓아 성벽 높이까지 올리는 작업.
蟻附 (의부):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공격함. 무모한 공성전을 비유한다.
輔 (도울 보): 수레바퀴 옆의 덧댄 나무. 나라를 받쳐주는 장수의 역할을 비유한다.
縻 (묶을 미): 말을 묶어두는 고삐. 縻軍은 군대를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
虞 (헤아릴 우): 헤아리다, 대비하다.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준비.
御 (거느릴 어): 마차 고삐를 잡고 제어하는 모습. 군주가 장수를 지나치게 통제하려는 '과도한 간섭'을 경고하는 글자.
殆 (위태로울 태): 歹(뼈 앙상할 알) + 台(태, 음부). 위험한 상태. 손자는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고 '백전불태'라 하여, 승리보다 생존과 보존을 강조했다.
4. 해설: 최고의 승리는 싸우지 않는 것이다
제3편 〈모공〉에서 손자는 전쟁의 목적을 다시 정의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백전백승'은 사실 손자가 가장 경계한 승리다. 싸울 때마다 피를 흘리고 자원을 소모한다면, 아무리 이겼다 해도 국가는 상처만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손자가 말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승리는 적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상처 없이 손에 넣는 것이다. 나라와 군대를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흡수해 내 편으로 만드는 승리다. 이는 전쟁을 단순한 무력 충돌이 아니라, 국가를 운영하는 관점에서 바라본 결과다.
그래서 손자는 칼을 뽑기 전에 먼저 적의 전략을 흔들고, 그다음 적의 동맹을 끊으라고 말한다. 군대를 직접 치거나 성을 공격하는 방식은 모든 방법이 막혔을 때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또한 손자는 승리를 가늠하는 다섯 가지 기준을 통해 리더십의 본질을 짚는다. 위와 아래가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지, 싸워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지, 준비된 상태로 허점을 기다릴 줄 아는지. 특히 유능한 장수에게 판단을 맡기고 군주가 제어하지 않는 태도는 조직 운영 전반에 그대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지피지기 백전불태'는 단순히 상대를 잘 알라는 말이 아니다. 나 자신의 한계와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라는 경고에 가깝다. 결국 〈모공〉의 핵심은 적을 쓰러뜨리는 기술이 아니라, 나를 지키면서 상대를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지혜의 격차에 있다.
한 줄 요약
모공(謀攻)이란, 칼을 뽑기 전에 이미 적의 전략을 무너뜨려 싸움 자체를 없애버리는, 손자가 말하는 최고의 공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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