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

🚴 한·중 수교 직전, 100만원으로 다녀온 중국 여행기 2탄 — 자전거 물결, 경극을 부른 남자, 그리고 쑤항의 미인들

CurioCrateWitch 2026. 3. 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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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 수교 직전, 100만원으로 다녀온 중국 여행기 2탄 — 자전거 물결, 경극을 부른 남자, 그리고 쑤항의 미인들

🚴 한·중 수교 직전, 100만원으로 다녀온 중국 여행기 2탄 — 자전거 물결, 경극을 부른 남자, 그리고 쑤항의 미인들

이 글은 아래에 소개된 〈한·중 수교 직전, 한 달간 100만원으로 다녀온 중국 여행기〉 1탄에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아직 1탄을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고 오시면 여행의 흐름을 더 재미있게 따라가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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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 수교 직전, 한 달간 100만원으로 다녀 온 중국 여행기 — 중국인 용변 테러의 유래, 산

🚀 한·중 수교 직전, 한 달간 100만원으로 다녀 온 중국 여행기 — 중국인 용변 테러의 유래, 산둥성에서 만난 북한인들, 호텔 전화기 감청, 5개국어를 하던 만 6세 케냐 꼬마 '무식하니까 용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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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1992년 중국 여행의 문화 충격과 제도의 그림자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결의 기억들, 그 시절 중국의 일상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경험한 순간들을 꺼내보려 합니다. 충격보다는 정겨움, 관찰보다는 교류의 기억들입니다.
 
한중수교 직전인 1992년 6월 한달 간의 중국여행기 1탄을 써 놓고 나니, 추가로 하나 둘 더 떠오르는 기억들이 생겼습니다. 눈을 감고 각 도시별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면 상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래도 굵직굵직한 기억들이 조금 더 떠올랐습니다.
 
중국여행을 생각한 건 제가 배운 중국어를 실제로 사용해 보고 싶다는 욕구로 시작됐습니다. 어학연수 가서 매일 기숙사 같은 곳에서 먹고 자며 학원 수업 받듯이 공부할 것 같으면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어서 현장학습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여행 내내 저는 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척 적극적으로 중국인들에게 말을 걸었고 그들과의 대화를 즐겼습니다. 책 속에 있던 단어들은 어느새 의사소통의 도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의미는 통하지만 표현이 이상하면 중국인들이 그 말을 받아서 제대로 된 중국어로 다시 말해 주며 이런 뜻이냐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표현을 손바닥만한 노트에 메모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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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행 중 추가로 기억난 것들을 두서 없이 적어보겠습니다. 한달 동안 있었던 일들을 블로그 포스트 한두 페이지에 다 적을 수는 없겠지만 굵직굵직하고 특별한 기억들입니다.


🌅 1. 하루가 일찍 시작되는 나라

1992년 중국의 아침은 무척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출근 시간이 7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해가 뜨면 거리 곳곳에서 큰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아침 체조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공원에서는 노인들이 태극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느린 동작들이 아침 공기 속에서 묘하게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자전거. 도시마다 자전거 물결이 넘쳐났습니다. 물론 자동차들도 많았지만 자전거 인구가 워낙 많아서인지 자전거 도로의 비중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출퇴근 시간이면 자전거 도로 전체가 물결처럼 흘렀습니다. 여자들은 치마를 입고도 능숙하게 자전거를 타더군요. 오후 4시쯤이면 퇴근하는 사람들의 자전거 물결이 다시 도로를 뒤덮었습니다. 그 풍경은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1992년 중국의 자전거도로 풍경


🚌 2. 탈것의 재미 — 홍콩 2층 버스와 베이징 굴절버스

여행자에게 그 나라의 대중교통은 그 자체로 볼거리입니다.
홍콩에서는 영국식 2층 버스(더블데커)가 다녔습니다. 저는 버스를 타면 무거운 짐을 다 들고서라도 기를 쓰고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2층에 앉아 창밖을 내려다보며 정신없이 홍콩 거리를 구경하곤 했습니다.
베이징에서는 버스 두 대가 앞뒤로 연결된 굴절버스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버스를 타면 늘 가운데 연결 부분으로 갔습니다. 버스가 좌회전, 우회전을 할 때마다 눈을 크게 뜨고 발밑의 연결부가 움직이는 것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바닥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촌스럽고 엉뚱한 여행자였습니다. ㅋㅋㅋ~


🍵 3. 자스민차의 홍콩, 룽징차의 중국

1편에서 말씀드렸듯이 홍콩에서는 어느 식당에 가든 자스민차를 물처럼 내주었습니다. 꽃향이 가득한 그 향을 잊지 못해, 지금도 자스민차를 마시면 그때의 홍콩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중국 본토에서는 룽징차(龍井茶)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룽징차였습니다. 중국인들은 누구나 룽징차가 든 보온병을 하나씩 들고 다녔습니다. 기차 안에서도, 거리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디서든 보온병을 들고 있는 중국인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안에는 룽징차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중국 음식은 기름지기로 유명한데, 중국인들이 의외로 날씬한 이유가 이 차 문화 덕분이 아닐까 하고요. 지금도 룽징차를 마시면 1992년 중국의 기차 안, 거리, 식당 풍경과 중국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 4. 샤오싱지우(紹興酒)와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들은 경극, 그리고 월량대표아적심

여행 중 중국인들과 식사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샤오싱지우(紹興酒)와 칭따오 맥주(青岛啤酒 )를 같이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중 40~50대쯤으로 보이는 중국인 남성 한 분이 무언가를 불러주었습니다.
경극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중국 전통의 창법이었습니다.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가장 중국적이고, 거의 문화유산에 가까운 것을 눈앞에서 듣고 있다는 느낌. 너무 멋있었습니다.
중국인들은 그 자리에서 저에게도 두어 차례 노래를 시켰습니다. 저는 부끄러웠지만 답례로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과 한국 노래 한 곡을 불렀습니다. 저는 노래를 잘 못 해서 노래방도 잘 안 즐기고, 그런 자리를 불편해 하는 편이지만 중국인들과 서로의 노래를 나누던 그 밤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 5.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쑤항 — 미인들을 찾아서

중국에는 "上有天堂,下有蘇杭(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쑤저우(蘇州)와 항저우(杭州)에는 미인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호기심에 그 두 곳을 일부러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미인들을 만났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 6. 중국식 집밥(家常菜) — 회전 테이블이 아닌 가정식

항저우에서 사귄 친구 중 한 명의 집에 초대받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 식당에서 먹어 본 회전 테이블에 요리가 여러 개 나오는 그런 식사를 기대했는데, 뜻밖에도 우리나라처럼 밥과 반찬들과 탕이 나오는 가정식이었습니다. 물론 반찬과 탕은 중국식이었지만요.
재미있는 건 먹는 방식이었습니다. 반찬을 얹은 밥그릇을 들어 입에 대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빗자루질하듯 입속으로 쓸어 담으며 먹었습니다. 원래 중국인들은 그렇게 먹는다고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따라서 같은 방식으로 먹었습니다. 여행이란 결국 그런 것 아닐까요? 이런 식사 방식의 장점은 음식을 잘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은 그래서 가끔 집에서 혼밥할 때 그렇게 먹곤 합니다. ㅋㅋㅋ~


🏠 7. 장강 근처 신축 집 — 시멘트 바닥에 신발 신고

장강(長江) 근처의 어느 2층 신축 집에 초대받아 간 적도 있습니다. 집에 들어서는데, 신발을 벗지 않더군요. 바닥이 시멘트였던 것 같습니다.
고개를 들면 분명히 가정집인데, 고개를 내리면 사무실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주거 문화가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 8. 상하이 치파오 — 기대와 현실

상하이의 어느 치파오 전문점에서 치파오를 입어본 적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허리 라인을 따라 날씬하게 쏙 들어간, 매혹적인 실루엣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입어보니 허리 부분이 헐렁해서 그 섹시한 라인이 나오지 않더군요. 기성복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맞춤으로 제작하거나, 기성복을 사서 수선해야 영화 속 그 느낌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약간 아쉬웠지만, 그것도 여행의 일부였습니다.


💑 9. 결혼증명서가 있어야 숙박이 가능한 나라

항저우의 호수 공원에서 연인들이 스킨십을 하며 데이트하는 장면을 본 이야기를 1탄에서 썼습니다. 그 배경에는 당시 중국의 독특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1992년 당시 중국에서는 결혼증명서가 있어야 남녀가 함께 숙박시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연인은 함께 호텔 방을 잡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공안의 단속을 받아서 걸리면 처벌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아이러니하게도 연인들이 밀실에 못 들어가고 공개된 공원의 구석에서 남들에게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며 데이트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 제도가 지금 중국 숏폼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번개 결혼' 설정, 그리고 결혼식보다 결혼증명서 발급을 먼저 받는 문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 "일단 증명서부터 받자"는 전개가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니라, 중국 사회의 오래된 제도적 관습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10. 천안문 광장에서 만난 엄숙한 침묵 — 모주석 기념당

베이징 여행 중, 천안문 광장의 모주석 기념당(毛主席紀念堂)에도 갔었는데 그 이야기를 빼놓은 것 같습니다. 홍콩 신혼부부와 함께한 베이징 여행의 일부였습니다.
기념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엄숙하게 줄을 따라 걸으며 미이라가 된 마오쩌둥의 시신 앞에서 참배를 하고 나왔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숨소리조차 조심하게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공기 자체가 1992년 중국 전체에 흐르던 분위기의 압축판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산당 아래 민초들이 "순종적이고 순수했다"고 1탄에서 썼던 그 느낌이, 기념당 안에서 가장 농축된 형태로 체험되었습니다.

1992년 천안문 광장


🇰🇷 11.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 낯선 땅에서 만난 우리 역사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도 방문했습니다.
생각보다 조그만 가정집 같은 건물이었습니다. 층별로 책상을 비롯한 약간의 가구들과 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화려하거나 웅장한 곳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는 사실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중국 땅 한가운데서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마주한 순간이었습니다.

상하이 임시 정부 건물 안에서 만난 한국인 사업가 분과 기념 사진 철칵!


🏯 12. 상하이 예원(豫園) — 중국 전통 정원의 풍경

상하이에서 예원(豫園)이라는 전통 정원에도 갔습니다.
중국 사극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둥근 창과 둥근 아치 문, 잉어들이 가득한 연못과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 우리나라 전통 가옥 최순우 옛집처럼 고즈넉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규모가 훨씬 컸습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그 인파 속에서도 정원의 아름다움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정원이라고 했는데, 수백 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습니다.


🎵 13. 홍콩으로의 귀환 — 신혼부부와의 재회, 그리고 노래방에서 발견한 한류의 씨앗

중국 여행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왔을 때, 베이징행 기차에서 만나서 함께 베이징 여행을 했던 홍콩 신혼부부에게 연락했습니다. 반갑게 다시 만났고, 그들과 함께 식사 후 노래방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노래방 곡 리스트에 구창모의 〈희나리〉 중국어 버전을 비롯해 한국 가수들의 노래가 여러 곡 있었습니다. 아직 '한류'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이었는데, 한국 대중음악은 이미 홍콩까지 건너와 있었던 셈입니다.
그들의 집에도 방문했습니다.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홍콩 아파트 특유의 이중 철창 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14. 몽콕의 구관조 — 검역 개념이 없던 시절의 해프닝

귀국 전날에는 홍콩의 전철을 타고 몽콕(旺角)에 갔습니다. 몽콕은 새 시장(雀仔街)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구관조 한 마리를 샀습니다. 말을 가르치고 싶었거든요.
미니 새장 속의 구관조를 쇼핑백에 넣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청계천 새 시장에서 새 한 마리 사오는 것처럼... 검역 같은 건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짐 검사를 받는데, 새장이 든 쇼핑백을 무심코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자 엑스레이를 통해 새를 확인한 공항 직원들이 갑자기 어수선해지며 당황하더군요. 어리둥절해 있는 제 앞에서 서로 이러쿵저러쿵 뭐라고 의논하더니, 결국 그냥 보내줬습니다. 지금이었다면 검역법 위반으로 벌금에 압수에 난리가 났을 텐데, 1992년은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다양한 상황에 대한 메뉴얼이 아직 자리잡지 않은 것 같았던 시절... 저는 귀국할 때까지도 끝까지 계속 무식해서 용감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한동안 구관조 앞에서 애교를 참 많이 떨었습니다. 새장 앞에 쪼그려 앉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복하고 또 반복했습니다. 결국 구관조는 "안녕하세요"를 배웠습니다. 쪼끔이었지만, 성공이었죠.
 


🌙 마무리하며 — 일상 속에 스며든 기억들

1탄에서는 문화 충격과 제도의 그림자를 이야기했다면, 이번 글은 그 시절 중국의 일상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느꼈던 것들을 담아보았습니다.
새벽부터 흐르던 자전거 물결, 보온병 속 용정차의 향, 샤오싱지우(紹興酒) 자리에서 들었던 경극풍 노래, 항저우의 미인 친구 집에서 먹은 가정식, 천안문 모주석기념당의 엄숙한 침묵,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마주한 우리 역사, 예원의 둥근 아치 문과 잉어 연못, 그리고 몽콕에서 데려온 구관조—이런 것들은 거창한 관광지의 기억보다 더 오래 남습니다.
30년이 넘게 지났지만, 용정차를 마시면 그때의 중국 사람들이 떠오르고, 자스민차 향을 맡으면 홍콩의 식당가가 생각납니다. 여행은 결국 장소가 아니라 감각으로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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