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고전과 지혜

[한문 입문자 분들에게] 한문 공부,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 주석 문화와 함께 읽는 고전의 길

CurioCrateWitch 2025. 7. 16. 21:44
반응형

[한문 입문자 분들에게] 한문 공부,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 주석 문화와 함께 읽는 고전의 길


한문 고전 번역서를 읽다 보면 누구나 문장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고,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감이 잘 오지 않곤 합니다.

왜 한문은 이렇게 읽기 힘들고, 번역마저 어렵게 쓰였을까요?


여기에는 한문이라는 언어가 지닌 속성과, 이를 대하는 번역자의 고민과 독자의 고충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주석 문화’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1. 아직 분화되지 않았던 언어의 특성


한문이 만들어지고 기록문자로 사용되던 시대에는 지금처럼 단어가 섬세하게 분화되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하나의 글자가 여러 뜻을 동시에 품고 있었고, 문맥에 따라 그중 하나를 짚어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行 하나만 해도 ‘가다’, ‘길’, ‘실행하다’라는 뜻을 모두 가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함축된 글자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번역자의 실수로 한자의 여러 가지 뜻 중에서 저자의 의도와 다른 뜻으로 번역하거나, 고문체로 번역해서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거나 자연스럽지 않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글자의 다의성 때문에 뜻을 단정하기보다는, 수없이 곱씹으며 참된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책을 백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讀書百遍義自見)”라는 말이 전해집니다.


2. 번역자들의 고민과 자존심: 직역 vs. 의역


한문을 번역하는 사람들도 고민이 많습니다. 고전 번역에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원문에 충실한 직역과 현대어로 자연스럽게 풀어쓰는 의역입니다.

그런데 의역을 하면 “한자 뜻을 몰라서 대충 추측해서 쓴 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까 봐 번역자들은 조심스러워요. (저도 의역을 가끔 하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많은 번역자가 원문에 충실하려다 보니, 번역문이 딱딱하고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3. 독자의 고충: 낯선 문장과의 싸움


하지만 번역자가 아무리 신중하게 번역해도,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고전의 문체와 한자의 함축적인 표현을 그대로 옮긴 문장은 현대어에 길든 눈으로는 쉽게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장을 여러 번 읽어도 뜻이 잘 잡히지 않는 것은 독자의 잘못이 아니라, 다의적인 한자의 특성, 번역의 한계, 그리고 고전이 본래 지닌 깊이와 난해함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뜻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한문 공부의 과정이자 묘미입니다.


4. 주석 문화의 발달과 의미: 고전 읽기의 길잡이


이런 이유로 동아시아에서는 주석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한 글자가 여러 뜻을 가지니, 선배 학자들의 해석을 참고하지 않으면 바르게 읽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주석 없이 읽기가 힘들어요.

『논어(論語)』에는 송나라 주희(朱熹)의 『논어집주(論語集註)』가 표준으로 자리 잡아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기본 교재가 되었습니다.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 역시 주희의 주석이 표준입니다.

삼경 가운데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에는 후한 시대의 정현(鄭玄) 주석이 권위를 가졌고,

『역경(易經)』에는 공자 계통의 ‘십익(十翼)’과 성리학자들의 주석이 더해졌습니다.

주석은 단순히 뜻을 푸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자의 의도와 문맥을 짚어줍니다. 이를 통해 후대 독자들은 고전을 더 쉽게 이해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더할 수 있었습니다.


5. 현대 번역서에도 해설이 필요한 이유


제가 블로그에 올리는 《채근담》 번역에 한자 뜻풀이와 해설을 꼭 넣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한자 풀이로 글자의 여러 뜻을 확인하고, 해설로 문맥과 저자의 의도를 짚어보면 고전이 훨씬 가까워져요.

번역만 읽으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왜 이렇게 썼지?” 하는 궁금증이 남죠. 해설이 있으면 저자의 의도와 배경을 깊이 음미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요. 주석과 해설은 옛사람과 대화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주석과 해설을 참고로 여러분이 직접 문장을 읽으며 자신만의 깨달음을 만들어 가는 과정, 그게 고전 읽기의 진짜 묘미입니다. 스스로의 언어로 직접 새로이 번역해 보시는 것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 마무리


한문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급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석과 해설을 참고해 뜻을 짚고, 문장을 여러 번 읽어 가며 음미하는 것이야말로 고전의 깊이를 느끼는 길입니다.

옛사람의 뜻을 좇고, 주석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더해가는 그 과정이, 바로 고전 공부의 즐거움입니다.



📌 참고


이 글은 한문을 공부하며 개인적으로 느낀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고전에 대한 해석과 공부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제 의견이 정답은 아닙니다.
읽으시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 Copyright © CurioCrateWitch. All rights reserved.
(본문의 무단 복제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