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선 조정은 안용복 선생의 감형에 반발했는가?― 국가가 영웅을 버리는 방식 ―숙종이 분명히 감형을 결정했고, '불허(不允)'와 '물번(勿煩)'까지 내렸는데도, 조선 조정 대신들은 며칠을 두고 집요하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는 단순한 형량 문제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안용복 선생의 존재 자체가 조선의 통치 이념과 외교 질서를 흔드는 불편한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인정하는 순간, 조선의 권위와 체제 전반의 허상이 무너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정은 그의 성과보다 '절차 위반'만을 부각하며 더 강한 처벌을 요구했던 것이죠.1. 외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의 투사안용복 선생의 일본행은 오늘날 기준으로는 자주 외교의 상징이지만, 조선 조정의 눈에는 '공식 외교 경로'를 무시한 민간인의 돌출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