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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외교 2

[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31] [8] 숙종 23년 4월 10일 (1697년) 숙종의 '불허'에도 더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계속된 상소

[8] 숙종 23년 4월 10일 (1697년)숙종의 '불허'에도 계속된 상소📜 원문 발췌> 請還收罪人安龍福減死定配之命。(中略)答曰, 不允。📚 번역죄인 안용복에게 내린 사형 감형 및 유배형 결정 명령을 거두어 줄 것을 청하였다.(중략)임금이 답하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해설|‘불허’라는 결론, 그러나 끝나지 않은 갈등이 짧은 문장은 안용복 선생의 처벌 문제를 둘러싼 조정 내부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숙종은 단호히 말했습니다. “불허.”하지만 이 말 한 마디로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표면적으로는 사형을 감형하고 유배형으로 결정한 군주의 확고한 의지였지만,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이는 오히려 논란을 잠재우지 못한 미완의 결론이기도 합니다.왜냐하면, 만일 모두가 납득했다면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

[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4] [2-11] ~ [2-15] 죄인인가, 외교 사절인가: 처분을 미루는 이유

우리에게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열쇠를 남겨주신 안용복 선생님!하지만 그분은 그 일 때문에 조선 조정에서 곤장 100대의 형벌을 받았습니다.너무 놀라운 사실이어서, 그 이유를 찾다가 저는 이 사건이 기록된 『승정원일기』 원문을 직접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세상에 나와 있는 자료들은 2차, 3차 가공을 거치며 잘못된 정보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너무 정교하게 잘 쓰인 논문 같은 글이라도, 인용을 따라가다 보면결국 원문이 존재하지 않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유령 원문’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심지어 사실의 근거가 되는 원문의 인용조차 없이, 마치 사실인 양 단정적으로 서술한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이번에 소개하는 기록은,당시 조정이 안용복의 처벌과 외교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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