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시리즈는 《승정원일기 속 안용복》 선생님의 역사적 행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중요한 문헌인 만큼 전문(全文)을 빠짐없이 소개하되, 긴 내용을 올릴 때에는 보다 쉽게 읽으실 수 있도록 의미 단위로 나누어 번역하여 연재하고자 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1696년 9월 27일 (숙종 22년) 1부 ]
1. 引見時, 領議政柳尙運所啓, 安龍福等捧招, 昨已啓下, 今當稟定矣。
→ 임금께 인견을 청할 때, 영의정 유상운이 아뢰기를,
“안용복 등이 자백한 내용은 어제 이미 아뢰었으니, 오늘 그 처리 방안을 결정해야 할 시점입니다.” 라고 하였다.
2. 臣意則龍福飄風虛實, 姑置勿論, 漂到之後, 有此作用, 卽一不畏法禁, 生事他國之亂民也。
→ 신의 생각으로는, 용복이 풍랑에 떠밀려 간 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그가 그곳에 도착한 이후 보인 행동은, 법도와 금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혼란을 일으킨 난민의 행위입니다.
3. 不可容貸, 而且彼國, 每於漂海人還送之際, 毋論漂到於何所, 必自對馬島還送, 乃是例也。
→ 도저히 용서할 수 없으며, 더구나 저 나라는 해상에서 떠내려온 사람을 송환할 때마다,
어디에 떠밀려 왔든 상관없이 반드시 대마도(對馬島)를 통해 돌려보내는 것이 관례입니다.
4. 雖尋常漂船, 亦且如此, 況此呈文之人, 不送對馬島, 直自其處出送, 而又爲成給文字, 不可不以此, 明白言及於彼中矣。
→ 보통의 조난자조차도 그러한데, 하물며 문서를 제출한 이 사람을 대마도를 거치지 않고 직접 그곳에서 돌려보내고,
게다가 문서까지 작성해 준 일은, 반드시 그 사정을 저들에게 분명히 언급해야 합니다.
5. 龍福到彼所爲之事, 只憑其招, 亦有不可盡信者, 龍福則姑待渡海譯官還來後處斷, 似宜矣。
→ 용복이 그곳에서 했다는 일은 오직 그의 자백에만 의존하고 있어 모두 신뢰하긴 어렵고,
용복의 처분은 우선 바다를 건너간 역관이 돌아온 후에 판단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배경 해설
왜 조선 조정은 안용복의 상소문에 당황했을까요?
조선과 일본은 수백 년 동안 외교적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사실 서로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고 존중했다기보다는, 양국 모두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은 일본을 외국(外國)으로 여겼고, 조선 중심의 세계관에서 ‘왜(倭)’는 그저 동남쪽의 오랑캐에 가까운 존재였어요.
반대로 일본도 조선을 하위로 보려는 태도를 보였고, 특히 일본 막부는 조선의 국왕을 ‘일본의 신하’처럼 다루고 싶어했습니다.
이런 팽팽한 외교 인식 때문에, 조선은 일본의 막부와 직접 상대하지 않으려 했고, 외교는 늘 대마도주를 중간에 세워 ‘완충 장치’처럼 활용했습니다.
일본 역시 조선과의 외교 문제는 대마도주에게 맡겼죠.
그런데 바로 이 틈을 안용복이라는 인물이 깨뜨린 겁니다.
그는 공식 외교 루트를 거치지 않고, 대마도를 건너뛰어 직접 일본 막부에 상소문을 올리는 파격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 안에는 “대마도주가 조선 땅을 침범하고도 반성하지 않는다”는 강한 표현까지 담겨 있었죠.
이건 조선 조정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가 외교 채널도 아닌 민간인의 입을 빌려 일본에 항의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는 점에서 외교적 부담이 생겼고,
일본 입장에서는 “조선이 우리 막부를 대화 상대로 인정했네?”라고 해석할 수 있는 체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조선 조정은 이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외교 질서를 어지럽힌 죄”로 안용복을 엄중히 다루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거죠.
참고 자료
▪︎ 『승정원일기』 숙종 22년 9월 12일자
▪︎ 국사편찬위원회 디지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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