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 원문
柳尙運曰, 渡海譯官回還時, 島倭送書, 歸罪於已死之前島主, 而鬱島則禁倭人, 使不得往來, 狡倭情狀, 巧詐萬端, 雖未知緣何自服如此, 而差倭遺以謾書之後, 久無消息, 無他端而猝有此自服之事, 以此觀之, 似不可無所以致此之由。
況今玆事, 未及結句, 龍福, 雖有犯法之罪, 徑先處斷, 不如姑觀前頭之爲愈矣。
📝 번역
유상운이 다시 말하였다. “역관이 귀국한 이후, 대마도 왜인이 보낸 서신에는 이 모든 잘못을 이미 죽은 전임 도주에게 돌리고, 울릉도에는 왜인이 드나드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왜인들의 행태는 온갖 교활하고 속임수로 가득하니,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복종하는 태도를 보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그들이 안용복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보낸 뒤로는 한동안 아무 연락도 없었고, 별다른 계기도 없었는데 갑자기 이런 복종의 뜻을 밝혔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무언가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더욱이 이 사안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으므로, 안용복이 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성급히 판결을 내리는 것보다는 당분간 사태를 지켜보는 것이 낫습니다.”
🔍 해설|일본의 돌변, 조선의 무기력
이 대목에서 영의정 유상운은 일본 측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대해 강한 의심을 드러냅니다. 대마도 왜인이 보낸 서신에서 모든 책임을 이미 사망한 전임 도주에게 돌리고, 울릉도에는 왜인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금지하겠다고 밝힌 내용은 언뜻 순응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숨은 의도를 조선 조정은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상운은 일본을 “교활하고 속임수 가득한 자들”이라고 표현하며, 그들이 안용복 선생에게 조롱의 편지를 보낸 이후 한동안 침묵하다가 이제 와서 순순히 복종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수상하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조정의 이러한 반응은 일본의 교묘함을 경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그 배경에 있는 안용복 선생의 결정적인 외교 성과를 인식하거나 평가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안용복 선생은 일본에 건너가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명확히 인정받는 외교적 성과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조정은 그러한 변화의 원인을 ‘안용복의 행동’에서 찾지 않고, 그저 일본의 돌변 자체를 두려워하며 소극적으로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처벌보다 지켜보는 것이 낫다”는 유상운의 말은, 표면적으로는 신중한 접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도권 없는 외교, 즉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 자체를 미루는 조선의 수동적인 외교 현실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이는 곧 일본과의 마찰을 피하는 데 급급해, 자국민의 성과마저 제대로 살리지 못한 당시 조선의 외교적 무능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일본의 간계를 경계하면서도, 그 간계를 꺾고 돌아온 영웅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했던 것. 그것이야말로 이 기록이 전하는 가장 뼈아픈 현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