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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독도 이야기

[독도 #3]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 — 안용복, 이름 없는 외교관이 되다 (1부)

by CurioCrateWitch 2025.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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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 동상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황금어장 울릉도와 독도


17세기 후반, 조선의 어민들은 울릉도 근해에서 고기를 잡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울릉도는 물론 그 주변의 작은 섬, 송도(松島, 오늘날의 독도)까지 조선의 어로 공간이었다.

울릉도와 그 주변 바다는, 따뜻한 동한난류(東韓暖流)와 차가운 북한한류(北寒寒流)가 교차하는 지역으로,

플랑크톤이 풍부해 수많은 어종이 몰려들었다.

이로 인해 울릉도 해역은 오징어, 명태, 대구, 방어, 삼치 등
풍부한 어족 자원으로 가득한 '황금 어장'이 되었다.

특히 울릉도 오징어는 크고 질이 좋아,
조선 어민들에게는 생계를 좌우하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이 황금 어장을 노리고 일본 어민들까지 몰려들면서, 조선과 일본 어민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동래 어부 안용복의 결심

동래 출신 어부였던 안용복은 어머니를 뵈러 울산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승려 뇌헌과 함께 울릉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울릉도에는 해물이 풍부하다."

"그런데 일본 어민들이 자주 드나든다.
"


이 소식을 들은 안용복
조선의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는 영해(寧海) 출신의 뱃사공 유일부 등과 함께 배를 타고 울릉도로 향했다.



울릉도에서 벌어진 일본 어부들과의 첫 대면

울릉도에 도착한 안용복 일행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울릉도 해안가에는 수십 척의 일본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산과 들에는 잡목, 매, 까마귀, 고양이들이 가득했다.

조선 땅인 울릉도가 일본 어민들의 무단 침범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용복은 주저하지 않고 일본 어민들에게 외쳤다.

"울릉도는 본디 우리 조선의 땅이다!
너희가 어찌 감히 침범하는가?
모두 포박하겠다!"



송도(독도)까지 이어진 항의

일본 어민들은 변명했다.
"우리는 송도(松島, 독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잠시 들렀을 뿐이다."

그러자 안용복은 단호히 맞받아쳤다.

"송도 또한 우리 조선의 자산도(子山島)다!  감히 그곳에서 고기잡이를 하다니, 모두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
(자산도 = 독도의 별칭)

그는 일본 어민들을 몰아내고,
직접 송도(독도)까지 배를 몰고 가 일본 어민들의 불법 고기잡이 현장을 확인했다.

송도에서도 일본 어민들이 고기 기름을 다리는 장면을 발견한 안용복은
막대기로 솥을 깨뜨리며 강하게 항의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어민들과 심하게 충돌하게 되었고, 일본 측은 안용복 일행을 억류했다.



뜻밖의 억류, 그리고 오키섬

이와 같이 일본 어민들과의 충돌 이후, 안용복 일행은 일본 측에 의해 억류되었다.

일본 관리들은 안용복을 오키섬(隱岐島)으로 끌고 가 심문했다.

오키섬 관리들은
"어떻게 우리 땅에 들어오게 되었는가?"
물었다.

안용복은 당당하게 답했다.

"나는 조선의 백성이다.

울릉도와 송도는 본래 조선 땅이며, 일본 관백의 서계(書契)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그런데 너희 일본 어민들이 우리 땅을 침범했다."


비변사에 남긴 기록

안용복은 조선으로 돌아와,
조정의 최고 기관인 **비변사(備邊司)**에서 신문(추문)을 받는다.

그는 신문 자리에서도 굽히지 않고 진술했다.

울릉도와 송도는 조선의 영토다.

일본 어민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강하게 항의했다.

관백 서계까지 근거로 제시했다.



이 진술을 통해, 안용복은 조선 조정에도 울릉도·독도 영유권을 재확인시켰다.


안용복이라는 인물

안용복은 단순한 어부가 아니었다. 성품이 굳세고 사나우며, 기지가 넘쳤고,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으며 일본어에도 익숙했던 인물이었다.

오랜 어업 생활 덕분에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가졌고, 조선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사람이었다. 국제 정세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좁은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줄 알았다.

물론 당시 조선은 해금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먼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것은 원칙상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안용복은 그 규정을 넘어, 나라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행동했다.

그는 평범한 민간인이었지만, 조국을 위한 사명감으로 바다를 넘은 시대의 선구자였다.




1부 마무리

바다를 지키려는 한 사람의 외로운 외교

안용복의 첫 번째 항해는 정식 외교관도 아니고, 나라의 명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바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 어민들과 맞섰고,

조선 땅을 지키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그의 용기 있는 발걸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곳에 세워진 안용복의 동상들을 통해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비록 그는 평범한 어부였지만, 동상 속 안용복은 나라를 대표하는 관리의 모습으로 당당히 서 있다.

이는,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서도 조국의 영토를 지키려 했던 그의 뜻과 행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국가의 명령이 아닌 스스로의 결단으로 나섰던 그의 용기는, 오늘날까지도 울림을 준다.


[다음 이야기 예고]

▪︎  "일본 어민을 체포한 사나이 — 안용복, 일본 막부를 움직이다 (2부)"



참고자료

▪︎ 《숙종실록(肅宗實錄)》, 숙종 22년 9월 25일 기사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숙종 22년 기록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강원도 울진현 조항

▪︎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지리조(地理條)

▪︎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1900년, 울릉도 독도 관할 규정) ※ 맥락상 현대 독도 이해를 위해 보충

▪︎ 교부 독도정책과 자료: 독도 영유권 관련 사료 해설

▪︎ 국사편찬위원회 디지털 자료관: 독도 관련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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