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속 인물과 기록/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속 안용복 #3] [1-3]숙종 20년 2월 23일 | 일본은 ‘다케시마’라고 주장하고 조선은 ‘진을 설치하자’고 했다!

CurioCrateWitch 2025. 6. 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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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숙종 20년 2월 23일
일본은 ‘다케시마’라 주장하고
조선은 ‘진을 설치하자’ 했다!


📜 원문 발췌

於是, 治泊船鬱陵島人, 或刑訊或編配。 後承旨金龜萬侍講筵, 白上曰: "臣昔爲江原都事, 至海上, 問居人以鬱陵島, 則爲指示之, 臣早起遙望, 三峰歷歷, 及日出, 都不可見矣。 以此比之於靈巖 月出山之望濟州, 則尙爲近矣。 臣謂當置鎭于此島, 以備不虞。 向者漁採人之謫配, 恐爲過也。" 上曰: "爾言亦有見矣。"


📚 번역

울릉도에 배를 정박했던 사람들은 처벌을 받았고, 일부는 고문을 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승지 김귀만이 경연에 참석해 임금께 아뢰었습니다.

“신이 예전에 강원도 도사로 있을 때 바닷가에 가서 울릉도에 대해 현지 주민들에게 물었더니 손으로 가리켜 보여주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세 봉우리가 또렷하게 보였지만, 해가 뜨자 곧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은 마치 전라도 영암의 월출산에서 제주도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했으며, 오히려 그보다 가까운 듯했습니다. 신은 이 섬에 진(鎭)을 설치해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어민들을 유배 보낸 처사는 과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네 말도 일리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 해설

이 기록은 울릉도에서 어로 활동을 하던 어민들이 처벌받은 사건과 함께, 조선 조정이 울릉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조선은 국법을 어긴 어민들을 단호하게 다스림으로써,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자국의 주권을 지키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김귀만 승지는 이와는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그는 울릉도가 실제로 육지에서 눈으로 보일 만큼 가까운 섬이며, 전략적 요충지로서 군사 거점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어민들을 처벌한 조치가 너무 지나쳤다고 지적하며, 오히려 이런 조치가 울릉도에 대한 조선의 실효적 지배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음을 경계했습니다.

임금인 숙종 역시 그의 의견에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고, 이는 이후 울릉도 수비와 진(鎭)의 설치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단초가 되었습니다.

즉, 이 기사는 단순한 어민 처벌 사건을 넘어, 조선의 울릉도 정책이 '제재'에서 '실효적 영유 강화'로 전환되는 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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