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종일기 22년 9월 27일 (1696년)
[2-24]
원문
柳尙運曰, 此事, 雖無先例, 然似不可終掩, 當詳察彼中實狀, 作書一通, 啓達之, 似爲得宜。
번역
유상운이 아뢰기를, “이 일은 비록 전례는 없으나, 끝내 숨겨둘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러니 일본 측의 실제 상황을 면밀히 살핀 후, 서신을 한 통 작성하여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였습니다.
해설
이 발언은 사건을 일본에 공식 통보해야 한다는 조정 내부의 공감대를 보여줍니다.
이는 조선 조정이 공식적이고 투명한 외교 절차를 통해 일본과의 외교 신뢰를 굳건히 하고,
안용복 사건을 정리함으로써 앞으로의 대응에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2-25]
원문
李俶曰, 此事, 雖係島主, 然爲其間事情, 作書恐爲不合, 但口傳其意, 豈不可乎? 上曰, 言及彼館, 不可使東萊府使言及, 當須別作書送之矣。
번역
이숙이 말하기를, “이 일은 대마도주와 관련된 사안이기는 하나, 그 사이의 사정을 생각하면 국서를 보내는 것은 부적절할까 염려됩니다. 그저 구두로 뜻만 전달하는 것이 어찌 불가능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일본 사절단이 머무는 왜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동래부사를 통해 전달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따로 국서를 작성해 보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해설
이 장면은 단순히 서신을 보낼지 말지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어떤 형식으로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조정의 공식 입장을 확정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것은 안용복의 공로를 조선의 수확품으로 공식화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공로를 통제하고 사건의 외연을 좁히려는 의도였습니다.
울릉도를 다시 내 줄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가능성을 부정할 만큼 당당한 조정의 태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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